Field Notes · 공간

고성 바닷가, 파도가 남기고 간 것들

강원도 끝자락, 고성의 바다는 조용히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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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짭조름하면서도 어딘가 풀내음이 섞인, 동해 특유의 공기. 속초나 강릉의 바다와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 관광지의 소란이 걷혀 있고, 그 자리에 바람과 파도 소리만 남아 있는 느낌이랄까.

고성은 강원도의 가장 북쪽에 자리한다. 민간인통제구역과 맞닿아 있어서인지, 이곳의 바다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덕분에 해안선이 유난히 온전하다. 모래가 고운 것은 물론이고, 수심이 얕은 구간에서는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물이 맑다. 처음 그 투명함을 마주했을 때, 나는 한동안 그냥 서 있었다.

이 바다에는 이름 있는 해변이 몇 군데 있다. 그 가운데 화진포는 단연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석호(潟湖)라 불리는 자연 호수가 바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지형인데, 담수와 해수가 경계를 이루며 공존한다. 철새들이 계절마다 이 호수를 거쳐 간다고 하니, 바다를 보러 왔다가 호수의 새 소리를 듣게 되는 셈이다. 고성의 자연은 이렇게 예상 밖의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

창 너머로 펼쳐지는 수평선 — 이곳에서는 바다가 풍경이 아니라 일상의 배경이 된다.

숙소 창가에 앉아 있으면 바다가 액자처럼 들어온다. 쿠션에 등을 기대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쥐고, 그냥 바라보는 것. 고성에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이것만큼 솔직한 것도 없다. 파도는 일정한 리듬으로 밀려왔다가 물러나고, 그 반복 속에서 생각이 조금씩 느슨해진다.

고성의 아침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해가 수평선에서 막 떠오를 무렵, 바다는 주황빛과 회색빛이 뒤섞인 색을 띤다. 어선 한두 척이 먼 바다에 점처럼 떠 있고, 해변에는 아직 사람이 거의 없다. 그 시간에 모래사장을 걸으면, 발자국이 오롯이 내 것만 남는다. 소소하지만 꽤 각별한 감각이다.

겨울 고성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여름 피서객이 빠져나간 자리에 바람만 남고, 파도는 한층 거세진다. 방파제 근처에 서면 물보라가 얼굴까지 날아오기도 한다. 불편하다면 불편한 날씨지만, 그 날카로운 감각이 오히려 이 바다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고성을 겨울에 한 번 와 본 사람이 다시 찾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 같다.

바다 마을의 작은 항구에 들르면, 갓 잡아 올린 생선을 손질하는 어부들을 볼 수 있다. 말이 많지 않고, 손놀림이 빠르다. 관광객에게 특별히 친절하거나 불친절하지도 않다. 그냥 자기 일을 한다. 그 담담함이 이 동네의 온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고성의 바다는 무언가를 팔지 않는다. 절경이라고 소리 높여 광고하지도 않는다. 그저 거기 있다.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고, 해가 뜨고 진다. 그 단순한 반복 앞에 한참 앉아 있다 보면, 여기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조용히 찾아온다.

Gallery

바다가 내다보이는 창가 — 고성의 수평선이 액자처럼 담긴다.